“관세 전쟁이 국제 무역 규칙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화상으로 참여한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미국을 겨냥해 한 말이다. 최근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열고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리(전승절) 80주년 열병식 행사에 권위주의 국가 정상들을 한데 불러모아 반(反)미·반서방 기치를 올린 데 이어 연일 미국의 관세 조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시 주석이 강조하는 것은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이다. 미국의 보호주의에 맞서 중국이 자유무역의 수호자임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무역 수호자를 자처하는 중국은 올해 최다 수준의 경제적 제재 조치를 취했다. 미국과의 관세 전쟁에 맞서 희토류 등 원자재 수출을 통제하는 등의 조치를 가한 것이다. 미국을 목표로 한 것이지만 다수의 경제적 제재 조치와 함께 공급망 자체를 쥐고 흔든 중국의 행보는 다른 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중국도 미국 못지않게 국제 무역 규칙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중국의 경제 제재 올해 최다… 관세·비관세 전략 혼용 = 최근 스웨덴국립중국센터가 발표한 ‘중국의 제재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중국이 취한 경제적 조치는 수출입 통제, 표적 제재, 외국 기업 영업 방해 등을 모두 포함해 35건으로, 2020년대 들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1차 무역전쟁을 벌였던 2019년 당시 31건을 이미 넘어섰다. 공식 제재가 22건, 비공식 제재가 13건이다.
중국은 단순히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훨씬 다양한 비관세 수단을 활용했다. 1차 무역전쟁 때는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략에 다소 당황한 모습을 보였고, 보복 조치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미국 산업에 한정해 취하며 자국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으나 이번엔 훨씬 과감하고 전면적인 전략을 펼친 것이다. 미국산 제품에 최대 125% 관세를 부과하면서 함께 사용한 비관세 전략으로는 △미국 국방·기술 산업에 필수적인 원자재 수출 통제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 조치 △보건 및 안전을 이유로 한 수입 제한 △독점금지·반덤핑 조사를 통한 압박 등을 들 수 있다.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Unreliable Entity List)’ ‘반외국제재법(Anti-Foreign Sanctions Law)’ ‘수출 통제 목록’ 등을 활용했다. 제재의 목표가 된 기업은 주로 미 국방 기업이었지만 패션 회사인 피브이에이치 그룹(PVH Group), 유전체 분석기업 일루미나(Illumina) 같은 민간 기업도 대상이 됐다.
중국은 먼저 5개 전략 광물에, 이후 7개 희토류 원소에 대해 수출을 통제했는데 이 광물들은 방위산업, 첨단기술, 청정에너지 산업에서 필수 자재로 꼽힌다. 이처럼 중국은 1차 무역전쟁 때에 비해 훨씬 더 성숙하고 체계화된 공식 제재 도구들을 적용했다. 중국의 수출 통제는 특히 미국에 치명적인 조치로 작용했다.
중국은 비공식 방식도 병행해 경제적 보복의 폭을 더욱 넓혔다. △다국적 기업 불매 독려 △특정 국가 제품에 대한 세관 통관 지연 및 금지 △반독점법, 산업안전기준, 식품검역 기준 등을 이용한 외국 기업의 중국 내 운영 방해 등이다. 엔비디아와 구글, 듀폰 등에 대한 반독점 조사, 미국산 의료용 CT 튜브에 대한 반덤핑 조사 등이 구체적 예다.
중국의 이 같은 전략은 1차 무역전쟁 이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수출통제법을 제정하고 제재 목록을 정비하는 등 법적 근거를 사전에 마련하고 실제 외교·무역 갈등 시 해당 조치를 발동한 것이다. 조 바이든 전 미 행정부의 기술 제한에 대응해 중국은 갈륨, 게르마늄, 흑연, 안티몬 소재에 대해 수출 허가제를 먼저 도입했고, 이후 미국에 대한 수출 전면 금지를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수출 허가 절차를 통해 시간과 압박을 조정했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중국의 보복 전략이 2단계 방식(two-step method)으로 진화했다”고 짚었다.
◇전 세계 공급망에 차질… 한국도 타격 불가피 = 중국의 희토류 등 원자재 수출 통제 조치는 지난 4월 이후 자동차 제조업체, 반도체 기업, 항공우주 산업, 국방 관련 업체 등 전 세계 공급망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했다. 유럽은 중국 수출 규제의 영향을 받는 대표 지역 중 하나다. 핵심 부품들의 유럽 납품이 지연됐고 일부 의료기기 및 자동차 제조사는 생산 중단에 직면했다. 유럽연합(EU)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핵심 원자재법’(CRMA·Critical Raw Materials Act)을 추진 중이지만 중국산 원자재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유럽 방위 산업 일부가 중국 희토류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지속 가능성에도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한국도 타격을 입고 있다. 한국은 희토류, 흑연, 리튬, 게르마늄 등 주요 산업 광물의 70∼95%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발간한 ‘공급망 분절화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흑연·게르마늄·희토류 등 3종의 핵심광물 수출을 4∼6개월간 통제할 경우, 한국 반도체 수출액은 총 55억9000만 달러(약 7조6000억 원)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같은 수출 통제가 미국을 넘어 중국이 강조해 온 세계 자유무역 흐름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출처 : 문화일보